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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뷔리당의 당나귀

by "''"'' 2021. 9. 23.

뷔리당의 당나귀

뷔리당에 작은 당나귀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 당나귀는 그의 주인처럼 지혜롭고 이성적이었다. 하인은 매일 당나귀에게 여물을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인이 일이 있어 이틀간 외출을 해야 했다. 하인은 당나귀가 먹을 수 있게 한 무더기씩 같은 양의 여물을 양쪽 옆에 준비해 놓았다. 3일째 되던 날, 하인이 돌아왔을 때 뜻밖에도 당나귀는 배가 고파 숨이 간당간당했다.

 

뷔리당의 당나귀는 양과 질이 똑같고 양쪽 거리도 같은 건초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비록 당나귀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충분히 있었지만, 건초 두 더미의 가치가 서로 같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우열을 가릴 수 없었던 것이다. 불쌍한 당나귀는 결국 원래 자리에 계속 서 있는 채로 한편으로 양을 고려하고, 한편으로 질을 고려하고, 한편으로 색을 분석하고, 또 한편으로 신선도를 분석하며 이리저리 머뭇거렸고 결국 이틀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마터면 자기 자신을 굶겨 죽일 뻔했다.

 

이것이 바로 '뷔리당의 당나귀' 이야기로, 14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J. 뷔리당이 제기한 하나의 역설을 묘사한 데서 유래되었다. 뷔리당의 당나귀에 나오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이성적인 당나귀 한 마리가 양과 질이 모두 같은 건초 두 더미 사이에 있으면 결국 죽게 된다. 왜냐하면 그 당나귀는 도대체 어느 건초 더미를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 어떤 이성적인 결정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뷔리당이 제기한 이 역설의 처음 목적은 당시의 이성주의 사조를 반박하고 자신의 믿음을 변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누군가 지나치게 이성적이라면 밥을 굶은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끝없는 결정 장애에 빠져 위기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이해득실을 계속해서 저울질하며 망설이고 결정하지 못하는 현상을 '뷔리당의 당나귀 효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사실상 극단적 이성주의는 실제로 존재하기 어렵다. 많은 심리학자가 말하는 것처럼 뷔리당의 당나귀 효과에서 이성에 대한 이해는 지나치게 편협하다. 게다가 이성주의는 이상 기류가 흐르면 사람들에게 지금의 사고 틀을 벗어나 또 다른 선택을 하게 한다. 다시 말해 뷔리당의 당나귀 앞에 있는 볏짚 두 더미를 선택하는 것 외에 볏짚 한 무더기와 굶어 죽는 것 사이에서 선택하게 한다.

 

우리가 망설이며 우유부단하게 결정하지 못할 때, 종종 우리는 자신을 이성적이고 신중한 결정자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또한 걱정이 많고 소극적인 모습을 세세하고 이성적인 유비무환 자세'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나 우유부단한 사람은 언제나 선택 사이에서 배회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이러한 이성주의는 본질적으로 선택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양과 질이 모두 똑같은 2개의 볏짚은 없다. 이러한 종류의 선택은 다른 하나의 선택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고 동시에 어쩔 수 없이 미지의 결말을 만나게 되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없고, 그저 공포심에 떠밀려 계속해서 이해관계를 저울질하게 되는 것이다. 의외로 대부분 선택의 순간은 우리에게 천천히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인도에 전해지는 우스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고대 인도에 철학가 한 명이 있었는데, 뛰어난 지혜로 많은 여성의 환심을 샀다. 어느 날, 아름다운 여성 한 명이 그의 집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저를 당신의 아내로 받아주세요! 나를 놓치면,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여자는 찾을 수 없을 겁니다!" 철학가는 몹시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고려해보겠습니다.” 철학가는 결혼과 비혼의 장단점을 따로따로 나열해 생각한 후, 두 가지 선택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모두 균등하다는 것을 발견하곤 고민에 빠졌다. 결국, 그는 선택에 직면해 어느 쪽을 정할 수 없을 때는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혼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은 명확히 알 수 있었으나, 결혼 후의 모습은 어떨지 자기 스스로 알 수 없었다. 따라서 그는 그 아름다운 여성의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철학가는 여성의 집으로 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따님은 어디 있습니까? 따님에게 전해 주세요, 저는 따님에게 장가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냉담하게 대답했다. “자네, 10년이나 늦게 왔네. 내 딸은 이미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

 

이 우스운 이야기는 우리를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표면적으로 보면, 철학가는 절대적인 이성주의의 태도를 보이며 자신의 혼인을 선택했다. 그러나 실제로 선택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기 때문에, 스스로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수단으로 자신의 두려운 감정에 맞서기를 바란 것이다. 이 우스운 이야기에는 후에 사람들에 의해 한 단락의 결말이 추가되었다. 철학가는 그다음 해에 우울하여 병이 났는데 죽을 때가 되자 자신의 모든 작품을 불더미에 던져 버리고, 단 한 단락의 인생에 대한 비고만을 남겼다.

 

만약 인생을 둘로 나눌 수 있다면 전반부 인생은 망설이지 말고' 후반부 인생은 '후회하지 말아라'.

선택 전에는 망설이지 말고, 선택 후에는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야말로 뷔리당의 당나귀 효과의 제일 좋은 반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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